겉과 속
고장 난 기계는 뜯어서 속을 들여다보아야 고칠 수 있다.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겉에서는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기계를 감싸고 있는 케이스는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밖에서 알 수 없게 한다. 사용자는 기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 필요가 없다. 이른바 '사용자 중심'의 '직관적 디자인' 덕분에 사용법을 따로 배울 필요도 없다. 전원을 연결하고 스위치를 누르면 나머지는 똑똑한 기계가 다 알아서 한다. 우리는 결과만 소비하고 과정은 기계에게 맡긴다.
이 편리한 분업은 기계가 고장 나기 전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기계가 멈추거나 오작동을 시작하면, 그동안 스위치만 누르던 손가락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힘들여 기계를 뜯어봐도암호처럼 복잡한 회로판 앞에서 우리는 속수무책이다. 요즘 기계들에는 임의로 분해하지 말라는 경고문까지 붙어 있다. 우리는 일상의 경계를 넘어서 기계의 세계 속으로 들어갈 권한이 없다. 전문가를 부르면 부품을 통째로 갈거나 기계 자체를 새것으로 바꾸라고 한다. 결국 고장 난 기계를 내다버리고 새것을 들여놓는다. 우리는 이 기계들의 주인이지만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물론 기계들도 우리가 갖고 있는 다른 걱정거리들에 아무 관심이 없다.
이런 관계가 우리 삶 전체를 지배한다. 문제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우리가 사물의 겉에만 관심이 있고 그 내부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고장 난 것이 냉장고나 세탁기가 아니라 우리 자신일 때, 우리가 속해 있는 집단일 때, 우리의 운명을 규정하는 제도 자체일 때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주어가 없는 세상
어떤 행위를 서술하는 문장에는 그 행위의 주체가 되는 주어가 있다. 그러나 '바람이 분다' ' 온다' 같은 문장. 주어는 '나는 걷는다' 와 같은 문장의 주어와는 다르다. 그것들은 문법적이고 형식적인 주어이지만, 그것들이 보여주는 행위는 그들의 의지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들에는 그런 의지 자체가 없다. 바람이 부는 것은 바람이 원한 것이 아니고, 봄이 오는 것은 봄이 원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배후에는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어떤 다른 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다른 주어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자연의 법칙이라고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신의 섭리라고 할 것이다.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의 사정이 이러하다.
그런데 사물이 아닌 인간이 주어의 자리에 놓일 때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자기 아닌 다른 것의 의지에 의해 등을 떠밀려서 주어의 자리에 서지만 진정한 주어는 뒤에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나는 걷는다'고 할 때, 걸음을 걷는 주체는 '나' 이지만, 그 뒤에는 내가 걷도록 만드는 제3의 주체가 있다. 이를테면 두려움 -뒤처지는 것에 대한, 멈춰있는 것에 대한, 걷지 못하게 되는 것에 대한- 이 나를 걷게 한다고 문장을 바꿔 쓰면, '나'는 곧바로 주어의 자리에서 밀려나고 만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쩌면 개인을 명목상의 주어의 자리에 앉히고 실은 영원히 무언가의 목적어로 살게 하는 세상인지 모른다. 진정한 주어가 없는 세상. 누구도 주인공이 아닌 세상. 욕망이나 두려움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이 유일한 주어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세상.
'책 한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돈내산 BOOK리뷰] #027 인플레이션 (0) | 2021.10.31 |
---|---|
[내돈내산 BOOK리뷰] #026 모피아: 돈과 마음의 전쟁 (0) | 2021.10.17 |
[내돈내산 BOOK리뷰] #024 밤 열한 시 (0) | 2021.10.03 |
[내돈내산 BOOK리뷰] #023 팩트풀니스 (0) | 2021.09.26 |
[내돈내산 BOOK리뷰] #022 LOSS(로스) 투자에 실패하는 사람들의 심리 (0) | 2021.0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