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잔화야.”
한나가 말했지만 사무엘은 알아듣지 못했다. 그저 예쁜 꽃이라고 생각했다. 한나는 금잔화가 완두콩과 어울리지 않는 꽃이라고 말했다. 완두콩 줄기를 마르게 한다고, 그래서 농부들은 이 예쁜 꽃을 완두콩과 함께 키우지 않는다고.
“하지만 완두콩 밭에서 캐낸다고 해서 금잔화가 쓸모없는 꽃이 되는 건 아니야. 그저 완두콩 밭에서 키우지 않을 뿐, 그 아름다움은 여전한 거란다.”
하지만 사무엘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고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은 고네의 말로 가득 찼다.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음에 스스로 놀랐다. 세상이라는 것이 바꿀 수 있는 무엇이라니. 그 말은 마치 사무엘의 인생 전체를 부정하는 것만 같았다. 그에게 세상은 그저 바람과 같고 물과 같고 햇볕과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배경처럼 원래 거기에 그렇게 존재할 뿐이었다. 그렇기에 세상이 주는 슬픔과 고통은 당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그것이 지나갈 때까지 담담하게 견뎌내야 하는 것이라고 의심 없이 믿어왔던 것이다. 하지만 고네는 짧은 시간 동안 그의 평생의 믿음과 앎을 단 몇 마디 문장으로 산산이 부숴버렸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니. 고통을 끝낼 수 있다니. 그것이 실제로 가능한지 가능하지 않은지는 그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사무엘은 자기 마음의 울타리가 무너지는 희열을 느꼈다.
"사무엘, 너는 어때?"
“뭐가?"
“시장에서 열리는 마녀 재판 말이야. 조금이라도 사회를 볼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것이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돈벌이의 수단이라는 걸 알아. 자기 하녀를 마녀로 팔아먹은 지체 높은 귀족은 십오 마나트를 손에 넣고, 시장 재판소는 불에 던지는 볼거리로 사람을 모으는 대가로 상인회로부터 세금을 걷지. 상인들은 모여든 사람들에게 물건을 팔아 이익을 얻고. 사무엘, 나는 너의 고견이 듣고 싶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같은 왕실 기사단의 지체 높은 자제들은 말이야. 오늘 당장 불에 던져지는 이름 모를 사람들을 구해야 할까, 아니면 몸을 웅크린 채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해서 먼 훗날 고위 대작이 된 이후에 세상의 구조를 변화시켜야 하는 걸까? 고네와 할라이는 전자고, 나와 할리드와 알릭은 후자야. 할리드의 말에 따르면 근본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은 위로부터의 변화고, 고네의 말에 따르면 그건 비겁함에 대한 자기변명일 뿐이지. 사무엘, 너는 어때?"
“잘 다듬어진 화살은 궤적 위에서 방향을 틀지 않는다. 올곧은 여행자는 자신의 여정 중에 길을 바꾸지 않는다. 소마는 잘다듬어진 화살이고 올곧은 여행자다. 누구나 삶의 여정 어딘가에서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하지만 언젠가는 본래 자신의 길을 찾게 되지. 그러니 걱정의 시간도 후회의 시간도 너무 길어질 필요는 없다. 화살이 아니라 화살을 찾아가는 과정이 너를 담대하게 하고, 너를 어른으로 만든다. 그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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