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과 속 고장 난 기계는 뜯어서 속을 들여다보아야 고칠 수 있다.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겉에서는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기계를 감싸고 있는 케이스는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밖에서 알 수 없게 한다. 사용자는 기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 필요가 없다. 이른바 '사용자 중심'의 '직관적 디자인' 덕분에 사용법을 따로 배울 필요도 없다. 전원을 연결하고 스위치를 누르면 나머지는 똑똑한 기계가 다 알아서 한다. 우리는 결과만 소비하고 과정은 기계에게 맡긴다. 이 편리한 분업은 기계가 고장 나기 전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기계가 멈추거나 오작동을 시작하면, 그동안 스위치만 누르던 손가락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힘들여 기계를 뜯어봐도암호처럼 복잡한 회로판 앞에서 우리는 속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