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대기 층에 있는 인질인데요, 여기 하와이안 피자 좀 갖다 주세요.”
인질극은커녕 자전거 도둑도 없는 조용하고 작은 도시의 새해 이틀 전날.
권총을 든 강도가 은행에 침입해 6천5백 크로나를 요구한다. 65만 크로나도 아닌 6천5백 크로나?
애석하게도 그곳은 현금 없이 운영되는 은행이었고,
경찰이 출동하자 당황한 강도는 얼떨결에 옆 아파트 오픈하우스로 들어가는데…
겁 많은 은행 강도와 한마디도 지지 않는 인질들의 하루는 어떻게 끝날까? (출판사 책 소개)
“이것 보세요, 이기지 못하면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어요. 어쩌다 보니 저절로 중역 회의실 상석에 앉은 사람은 없다고요."
심리 상담사는 원래 질문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원래 질문이 뭐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겨야 돈을 많이 벌 수 있고, 그것 역시 중요한 부분이겠죠? 돈을 어떤 데 쓰세요?"
"다른 사람들과의 거리를 사는 데 쓰죠."
심리 상담사로서는 처음 듣는 대답이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비싼 음식점은 테이블 간 간격이 넓어요. 비행기 1등석은 가운데 자리가 없고요. 특급 호텔에는 스위트룸 고객들이 드나드는 출입문이 따로 있죠. 지구 상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곳에서는 가장 비싸게 팔리는 것이 남들과의 거리예요."
"그리고 바로 그날…...” 율리아는 엉큼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에스텔은 꺅꺅거리면서 그러길 바랐을 수도 있지만 물론 그런들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을 거라는 말로 얘기를 마무리 짓고 싶은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절대, 그건 절대, 나는 절대……."
“왜요?" 율리아는 물었다.
에스텔은 자부심과 갈망을 동시에 가득 머금고서 미소를 지었다. 어떤 나이, 어떤 인생만 지을 수 있는 미소였다.
“왜냐하면 춤은 파티에 같이 간 사람하고 추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나는 크누트하고 같이 갔고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안나레나가 궁금해했다.
에스텔의 호흡은 빨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그녀에게 남은 엄청난 비밀은 많지 않았다. 이걸 공개하고 나면 전혀 없을 수도 있었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서 그가 책을 건넸는데 안에 그의 집열쇠가 들어 있었어요. 가까이 사는 가족이 없다며 '무슨 일이생길 경우에 대비해 한 건물에 사는 사람에게 예비 열쇠를 맡기고 싶다'고 했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 짓도 하지 않았지만…… 예감이 들었어요. 무슨 일이 벌어졌다면 그 사람이 기뻐했을 것 같은 예감이."
"저기…….… 인질 석방 조건을 지금 말씀드려도 될까요?"“아니, 무슨...…?"
그는 어안이 벙벙해서 눈썹을 추켜올렸다가 거의 짜증 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은행 강도는 열심히 고민했다.
"불꽃놀이요.” 마침내 그녀가 말했다. “저 안에 해마다 남편과 함께 불꽃놀이를 구경하신 할머니가 계세요. 남편이 지금은 고인이 되셨대요. 제가 그런 분을 하루 종일 인질로 붙잡아놓았어요. 그분께 불꽃놀이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짐은 씩 웃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로게르도 승진의 기회를 누렸어야 했어요. 나는 항상 생각했어요, 내년에는 그이 차례가 될 거라고. 하지만 시간이 생각보다 얼마나 빠르게 흘러가는지 몰라요. 그 긴 세월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어요. 가끔 어떤 사람과 아주 오래 살며 아이를 함께 키우는 게 나무타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올라갔다가 미끄러지고, 올라갔다가 미끄러지고, 모든 일에 열심히 대처하고 착하게 지내며 오르고 오르고 또 오르지만 그동안 서로를 눈에 잘 담지는 못하죠. 젊었을 때는 그 사실을 잘 모르지만 아이가 생기면 모든 게 달라지고 어떨 때는 배우자를 거의 못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해요. 최우선적으로 부모이자 동지이기 때문에 결혼은 우선순위에서 저 아래로 미끄러지죠. 하지만 당신들은……… 당신들은 나무를 계속 올라가면서 서로를 계속 눈에 담도록 해요. 나는 산다는 게 원래 그런 건 줄 알았어요, 그렇게 살아야 하는 줄 알았어요. 모든 걸 완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중요한 건 우리가 한 나무를 계속 올라가는 거라고 되뇌었어요.. 왜냐하면.… 너무 가식적으로 들리겠지만…… 왜냐하면 조만간 같은 나뭇가지에서 만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면 손을 잡고 거기 앉아서 풍경을 감상할 수 있을 거라고, 나이 들면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생각보다 얼마나 빠르게 흘러가는지 몰라요. 그리고 로게르의 차례는 돌아오지 않았죠."율리아는 계속 그녀의 팔을 잡고 있었다. 이번에는 힘을 내라는 뜻이라기보다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우리 엄마는 늘 변명할 필요 없다고 했어요. 뭔가를 잘하는 것에 대해 미안해하지 말라고요."
"그들은 붙잡을 뭔가를 찾고 있을 뿐이에요. 싸워서 지킬 뭔가를, 살 만한 공간을, 아이를 키우고 삶을 살아나갈 공간을."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뒤로 무슨 일이 있었나요?" 심리 상담사는 묻는다.
사라는 그녀를 보며 곤혹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그 질문에 무슨 수로 대답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녀는 대신 아무도 물은 적 없는 질문에 대답한다. “모든 게 쉽고 가벼워졌어요, 선생님. 은행은 이제 바닥짐이 아니에요. 백 년 전에는 그야말로 모든 은행원이 은행이 어떤 식으로 돈을 버는지 알았거든요. 지금 그 돈이 다 어디서 나오는지 정말로 아는 사람은 각 은행별로 기껏해야 세 명이에요.”
“그걸 더는 이해하지 못해서 은행에서 당신이 차지하는 위치에 의문이 생긴 건가요?” 심리 상담사는 넘겨짚는다.
사라의 턱이 서글프게 좌우로 움직인다.
"아뇨. 사직서를 제출했어요. 그 셋 중 한 명이 나였더라고요."
"그럼 앞으로 뭘 하실 거예요?"
"모르겠어요.”
심리 상담사는 마침내 중요한 말이 생각난다. 대학교에서 배우지는 않았지만 누구나 가끔 들어야 하는 말이다.
“잘 모르겠다는 데서 출발하는 것도 좋죠."
새벽이 지평선 너머로 고개를 내미는 동안 얼음으로 덮인 다리는 마지막까지 씩씩하게 버틴 별빛 아래에서 반짝인다. 솜이불과 꿈과 우리의 심장을 뛰게 만드는 꼬맹이들의 조그만 발 속에 파묻혀 아직까지 단잠을 자는 도시가 다리 주변에서 깊은숨을 쉰다.
사라는 난간 앞에 서 있다. 몸을 숙여 난간 너머를 내다본다. 딱 1초라는 찰나의 순간 동안 그녀가 뛰어내리려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누가 지켜보고 있다면, 그녀의 모든 사연과 지난 며칠 동안 벌어진 모든 일을 알고 있다면.… 그녀가 그럴 리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 것이다. 세상에 그 모든 과정을 거치고 이야기를 그런 식으로 끝내는 사람은 없다. 그녀는 뛰어내리고 그럴 성격이 아니다.
그렇다면?
잠시 후 그녀가 손을 놓는다.
바로 위에 서 있는데도 알고 보니 거리가 제법 멀다. 수면을 때리기까지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가볍게 긁히는 소리, 종이를 움켜쥐는 바람, 퍼덕이고 구겨지며 수면을 가르고 점점 멀어져 가는 편지. 도어매트에서 맨 처음 그 편지를 주운 뒤로 봉투를 만 번쯤 만지작거렸던 손끝이 저항을 포기하고 그 나름의 영원을 향해 편지를 띄워 보낸다.
10년 전에 그 편지를 보낸 남자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그녀가 알아야 하는 모든 것을 적었다. 그가 누군가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길지도 않은 딱 네 단어였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심오한 네 단어였다.
“당신이 잘못한 게 아니었어요."
소녀는 자라서 딸을 낳았다. 원숭이 하나, 개구리 하나를 낳았다. 그녀는 설명서 없이도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했다. 좋은 아내, 좋은 직원,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매일 매 순간 실패를 두려워했지만 얼마 동안은 모든 게 잘되고 있다고 진심으로 믿었다. 상당히 잘되고 있다고. 그래서 긴장을 풀었고 무방비 상태였기에 불륜과 이혼에 심하게 뒤통수를 맞았다. 인생에 케이오당했다. 살다 보면 거의 누구나 그런 일을 겪는다. 여러분도 그럴지 모른다.
몇 주 전에, 하교하는 길에 큰사슴과 원숭이와 개구리는 평소처럼 버스에서 내려 다리를 건넜다. 중간쯤 갔을 때 아이들이 걸음을 멈추었지만 엄마는 몰랐고, 나중에 뒤돌아보니 아이들이 10미터 뒤처져 있었다. 인터넷에서 다른 도시의 다리 난간에 사람들이 매달아 놓은 자물쇠를 본 원숭이와 개구리가 자물쇠를 사놓은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사랑을 영원히 가둬놓을 수 있어서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대요!"
그들의 엄마는 억장이 무너졌다. 이혼한 뒤에 엄마가 자기들을 사랑하지 않을까 봐 아이들이 걱정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모든 게 달라지고 그녀가 더는 자기들의 엄마가 아니게 될까 봐 걱정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10분 동안 흐느낌과 두서없는 설명이 이어지다, 원숭이와 개구리가 진득하게 엄마의 뺨을 두 손으로 감싸고 속삭였다. “우리는 엄마를 잃을까 봐 걱정하지 않아요. 엄마한테 우리를 잃을 일이 없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에요.”
자물쇠를 알맞은 자리에 매달자 철컥 소리가 났다. 원숭이가 난간 너머로 열쇠를 던졌고 세 사람 모두 뱅글뱅글 돌며 떨어지는 열쇠를 보며 함성을 질렀다. “영원히." 엄마가 속삭였다. “영원히.” 아이들도 따라 했다.
한 줄 PICK,
“우리는 엄마를 잃을까 봐 걱정하지 않아요. 엄마한테 우리를 잃을 일이 없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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