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줄

[내돈내산 BOOK리뷰] #040 기사단장 죽이기

자본추적자 2022. 2. 7. 08:03

기사단장 죽이기 /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즉 우리 인생에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왕왕 있다는 말이죠. 그 경계선은 꼭 쉬지 않고 오락가락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날 기분에 따라 멋대로 이동하는 국경선처럼요. 그 움직임에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자신이 지금 어느 쪽에 있는지 알 수 없어지니까요. 아까 제가 더 이상 구덩이에 머무르면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했던 건 그런 뜻입니다.

그 말에 나는 이렇다 할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멘시키도 그 이상 이야기를 이어가지 않았다. 그는 열린 창 너머로 손을 흔들고, V8 엔진음을 상쾌하게 울리면서, 아직 물감이 채 마르지 않은 초상화와 함께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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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무슨 뜻인지는 이해됩니다. 논리적으로는요. 하지만 제가 멘시키 씨 입장이라면 역시 진실을 알고 싶을 것 같아요. 논리적인 부분은 제쳐두고, 일단 진짜 사실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게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겠죠."

멘시키가 미소 지었다. “그건 당신이 아직 젊기 때문입니다. 제 나이쯤 되면 당신도 분명 이 심정을 알게 될 겁니다. 진실이 때때로 사람에게 얼마나 깊은 고독을 가져오는지."

"그리고 당신이 원하는 것은 유일무이의 진실을 밝히는 게 아니라, 벽에 걸린 그 애의 초상화를 매일 바라보며 그 안의 가능성을 곱씹는 일이다 정말 그 정도로 괜찮으신가요?"

멘시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저는 흔들림 없는 진실보다는 오히려 흔들릴 여지가 있는 가능성을 선택하겠습니다. 그 흔들림에 제 몸을 맡기는 쪽을 선택할 겁니다. 그게 부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내게는 아무래도 부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졌다. 적어도 자연스럽다고는 할 수 없다. 불건전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하지만 어차피 그것은 멘시키의 문제이지 내 문제가 아니다. 나는 스타인웨이 위의 기사단장을 쳐다보았다. 기사단장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양손 검지를 허공에 쳐들고 좌우로 벌렸다. 아마 대답은 미뤄두라는 의미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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