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와 같은 종류의 사람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처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과 사람을 끄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었어. 내 말은 그저 내가 특정한 취향과 감정을 그와 공유하고 있다는 의미였어. 그러니 앞으로는 계속해서 우리 두 사람이 영원히 단절되어 있다는 말을 반복해야만 해. 하지만 살아 숨 쉬고 생각할 수 있는 한 나는 분명히 그 사람을 사랑할 거야.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그런 표정. 그저 묻는 질문에 가식 없이 대답하기만 하면 되고, 얼굴을 찡그리지 않은 채 필요할 때만 그에게 말을 걸면 되는 건데. 그렇게 하기만 하면 그의 표정은 점점 더 환해지고, 더 친절해지고, 더 온화해졌어. 게다가 자양분을 제공하는 따사로운 햇살처럼 상대방을 따뜻하게 만들어주었고. 저 두 사람이 결혼하게 되면 대체 저 여자가 어떻게 그를 기쁘게 해주겠다는 걸까? 그런 일을 하게 될 것 같지가 않아. 하지만 그런 일을 못 할 것도 없는데. 정말이지 그의 아내가 된다면 분명히 그 따사로운 햇볕을 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가 될 거야.
아가씨가 춥다는 건 아가씨가 외롭기 때문이야. 누구와 접촉해도 아가씨 마음속에 불을 붙여 주지 않아. 아가씨가 아프다는 건 사람에게 주어진 감정 중에서 가장 좋고, 가장 숭고하고, 가장 달콤한 감정이 아가씨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야. 아가씨가 멍청하다는 건 그렇게 고통을 겪고 있으면서도 그 감정이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도록 손짓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야. 또한 그 감정이 자기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가씬 그걸 마중하기 위해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려고 하지 않아.
“해돋이를 좋아하오. 제인? 해가 떠올라 기온이 올라가면 분명히 녹아 없어지고 말 저 높고 옅은 구름이 낀 아침 하늘은 어떻소? 이렇게 평온하고 훈향이 감도는 아침 공기는 어떻소?”
“바로 그거요. 당신이 그렇다는 건 나도 알고 있소. 당신이 나를 도와주고 나를 기쁘게 할 때, 나를 위해 일을 해줄 때, 그리고 나와 함께 있을 때, 당신의 발걸음과 태도, 눈과 얼굴에 진정한 만족이 깃들어 있다는 걸 알고 있소. 당신이 특이하게 ‘옳은 일이기만 하다면 무슨 일’이라고 표현한 그 일이라면 말이오."
서로에 대한 애정이 황금빛 평화로 만들어진 고리처럼 주변을 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먼 장래든 가까운 장래든 제발 우리가 헤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말없이 기도를 올렸다.
"당신의 고백이 입술에서만 우물거리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사라지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요. 그 소리가 아직도 똑똑하고 부드럽게 내 귓가에 들리고 있소. ‘당신과 함께 살게 된다는 희망을 갖게 된 걸 영광으로 생각해요, 에드워드.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에요.’라는 고백 말이오. 너무 격식을 차린 고백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겐 음악처럼 달콤했소. 나를 사랑하오, 제인? 다시 한번 말해 주시오.”
독자 여러분이시여! 나는 바로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즉시 그를 용서했다. 그의 눈엔 너무나도 깊은 자책의 감정이 서려 있었고, 그의 목소리엔 너무나도 진실한 회한의 감정이 묻어 있었고, 그의 태도엔 너무나도 남자다운 힘이 배어 있었다. 게다가 그의 모든 표정과 태도엔 여전히 변치 않는 깊은 사랑이 깃들어 있었다. 나는 그를 완전히 용서했다. 하지만 말을 통해서나 겉모습으로 그러지는 않았다. 다만 가슴속 가장 깊은곳에서 그를 용서했다.
"그래,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제인이 알게 된다면 나와 생각을 같이할 게 분명해! 손을 내 손 위에 올려놓으시오, 자네트. 시각뿐만 아니라 촉각으로도 당신이 내 곁에 있다는 걸 입증해 줄 증거로 말이오. 이제 간단한 몇 마디 말을 통해 모든 진상을 밝히겠소. 내 말을 들어주겠소?”
그러고 나서야 내가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난생처음 발견하게 된 거요. 바로 당신을 발견한 거요. 당신은 나와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오. 나보다 더 훌륭한 내 반쪽이고 내 착한 수호천사요. 나는 당신에게 강력한 애착으로 속박되어 있소. 나는 당신을 착하고 재능이 있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오. 타오르는 진지한 사랑이 내 가슴속에 잉태되었소. 그 사랑이 당신에게 쏠리고 있고, 당신을 내 생명의 중심부와 원천으로 끌어들이고 있고, 당신 주변을 내 삶으로 감싸주고 있소. 그리고 그 사랑이 순수하고도 강력한 불꽃으로 타오르면서 당신과 나를 녹여 하나로 융합시키고 있소
여전히 그에 대한 생각은 나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 생각은 햇볕으로 사라지게 할 수 있는 수증기도 아니었고, 폭풍우로 씻어내 버릴 수 있는 백사장 위의 그림도 아니었다. 그의 이름은 대리석 석판 위에 새겨진 이름이었고 그걸 새긴 대리석만큼이나 영원히 오래갈 운명의 이름이었다.
“주인님, 혹시 제가 평생 살아오면서 착한 일을 한 게 있다거나 착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거나 진지하고 맑은 기도를 올린 적이 있다거나 정당한 바람을 소망한 적이 있다면, 바로 그 보상을 지금 받는 거예요. 당신의 아내가 되는 것이야말로 제게 있어서는 지상에서 가장 큰 행복이기 때문이에요.”
제가 귀하게 여기는 분의 몸을 품에 안는 특권을 누리는 일, 제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입술을 갖다 대는 일, 제가 신뢰하는 사람에게서 안도감을 느끼는 일, 그런 일들이 희생을 하는건가요? 만약 그렇다면 저는 분명히 희생을 즐기는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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