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사랑은… 눈송이 같을 거라고 해원은 생각했다. 하나둘 흩날려 떨어질 땐 아무런 무게도 부담도 느껴지지 않다가, 어느 순간 마을을 덮고 지붕을 무너뜨리듯 빠져나오기 힘든 부피로 다가올 것만 같다고. 그만두려면 지금 그래야 한다 싶었지만 그의 외로워 보이는 눈빛에서 피할 수가 없고, 그건 그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은섭은 마침내 결심이 선 듯 싱긋 웃었다.
"그래. 가보자. 너를 사랑하면 어떻게 되는지, 나중에 알게 되겠지.”
해원의 심장이 두근두근 빠르게 뛰었다. 그는 마치 어떻게돼도 좋다는 듯이 말하지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웃고 있어도, 그 눈빛에서 그가 누구보다 상처받기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걸 그녀는 깨달았다. 애초에 상처받을 만한 일들을 다 차단한 채 살아왔다는 걸. 그런 은섭을 그녀가 지금 흔들어놓고 있다는 것을.
# 오늘의 부피
오랫동안 기록을 계속하다 보면 오늘 날짜의 부피가 생긴다. 6년 전 오늘, 3년 전 오늘, 작년과 올해의 오늘, 겹겹이 층이 쌓이는 페이스트리 빵처럼 그 속에 기억과 장면들이 깃든다. 언젠가부터 겨울이 오면 H가 내려왔고, 그녀를 모른 척 바라보고, 가끔 서로 말을 나누고, 나는 겨울마다 어떤 날짜들의 부피를 쌓을 수 있었다. 그렇게 포개지는 일상들은 딱히 달라질 것이 없어 아무렇지 않았다.
그러다 올겨울 그녀가 내게 다가왔을 때, 우리가 사랑을 나누었을 때, 그 날짜들은 더 이상 균일한 평안함으로 쌓이지 않고, 오늘의 부피는 이전과는 달라졌다. 내년부터는 겨울이 와도 지금까지와 다를 것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다가올 겨울의 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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