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줄

[내돈내산 BOOK리뷰] #052 밝은 밤

자본추적자 2022. 4. 9. 08:15

밝은 밤 / 최은영 지음


왜 개새끼라고 하나. 개가 사람한테 너무 잘해줘서 그런 거 아닌가. 아무 조건도 없이 잘해주니까, 때려도 피하지 않고 꼬리를 흔드니까, 복종하니까, 좋아하니까 그걸 도리어 우습게 보고 경멸하는 게 아닐까. 그런 게 사람 아닐까. 나는 그 생각을 하며 개새끼라는 단어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나 자신이 개새끼 같았다.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https://www.freepik.com/premium-photo/asian-women-are-sitting-hugging-their-knees-bed_3946036.htm


"너무 상처받아서, 아파서 소리를 지른 게 죄가 될 수는 없어요."

"알아. 잘 알고 있어. 그냥, 그럴 때가 있었다는 거야. 마음이 나에게 박하게 기울 때가 있었어. 그래도 지연이 너한테 고마워."

"제가 뭘요….…'

"내 얘기 들어줘서. 들어줘서 정말로 고마워."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고 입가에 힘을 줘서 애써 웃어 보였다.

 

https://www.freepik.com/free-photo/young-woman-near-empty-hangers-dark-lamp_23475139.htm


"하나하나 맞서면서 살 수는 없어, 지연아. 그냥 피하면 돼. 그게 지혜로운 거야.”

"난 다 피했어, 엄마. 그래서 이렇게 됐잖아. 내가 무슨 기분인지도 모르게 됐어. 눈물은 줄줄 흐르는데 가슴은 텅 비어서 아무 느낌도 없어.”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피하는 게 너를 보호하는 길이라는 말이야.”

"날 때리는데 가만히 맞고 있는 게 날 보호하는 거야?"

"맞서다 두 대, 세 대 맞을 거, 이기지도 못할 거, 그냥 한 대 맞고 끝내면 되는 거야."

"내가 이길 수 있는지 없는지 그걸 엄마가 어떻게 알아?"

엄마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착하게 살아라, 말 곱게 해라, 울지 마라, 말대답하지 마라, 화내지 마라, 싸우지 마라. 귀에 딱지가 앉도록 그런 얘길 들어서 난 내가 화가 나도 슬퍼도 죄책감이 들어. 감정이 소화가 안 되니까 쓰레기 던지듯이 마음에 던져버리는 거야. 그때그때 못 치워서 마음이 쓰레기통이 됐어. 더럽고 냄새나고 치울 수도 없는 쓰레기가 가득 쌓였어.

 

https://www.freepik.com/premium-photo/dark-silhouette-girl-glass_7095129.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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