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여 네가 원하지 않는 걸 시키는 돼지새끼가 있거들랑, 실랑이하고 자시고 할 게 없어! 바로 이걸로 대답해버려!”
나나가 베르트의 코에 커다란 식칼을 흔들어대고 난 뒤, 창문 위에 매달려 꾸덕꾸덕 말라가는 햄 속에 힘껏 꽂았다.
“이렇게!”
나나는 그 자세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손이 칼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노쇠한 푸른 정맥이 주름이 자글자글한 피부 속에서 부풀어 올랐다. 한 줄기 공기도 스며들 틈 없이 굳게 다문 입술. 모든 숨이 무겁게 공기가 들고 나는 코로 집중되어 있었다.
“사내들이란 일단 흥분하면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아."
“그래도 할머니를 존중하게 하려고 그 꼰대들을 담근 거 아니었어요?"
“그래, 맞아. 하지만 존중은 폭력으로 관철시켜서는 안 돼, 절대.”
“그러는 할머니는요? 왜 할머니는 폭력에 의존하셨죠?"
매춘부가 옷차림과 상반되는 교육받은 언어로 물었다.
“날 지켜야 했으니까. 난 혼자였어, 그리고 여자였다. 그게 내 행동에 대한 변명이 될 순 없을지언정, 설명은 돼. 문제는 거기에 저런 반동분자들이 숟가락을 얹는다는 것이지만."
베르트가 무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비행 청소년이 발끈했다.
“뭐가요, 그게 왜 내 잘못이에요?"
“넌 폭력을 자랑스러워하니까, 꼬마야. 아무래도 넌 생각을 두 귀 사이에 있는 걸로 하는 게아니라, 가랑이 사이에 있는 걸로 하는 거 같구나.”
무스가 분노했다.
“아, 됐어요, 왜 시비예요? 작작해요, 인종차별주의자 늙은이!”
연보라색 가발의 천사가 폭력이 잠재된 이 설전 앞에서 기겁하여 침묵 속으로 움츠러들었다.
“봤느냐? 존중을 얘기하면서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벌써 목소리가 높아지는 거. 다음 차롄 내가 너한테 한 대 얻어터지고 난 뒤 다 죽어가는 노파가 되어 있는 거겠지. 내 말이 틀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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