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의 눈길이 나에게 머물러 있다는 걸 느낀다. 나는 그를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기분이 든다. 나는 어떻게 해서 우리가 짧은 시간에 이토록 친밀한 관계가 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그의 눈빛을 바라보는 게 그렇게 마음 편할 수 없다.
우리의 생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때에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리는 순간이 있다. 당신이 지닌 모순, 두려움, 회한, 분노, 머릿속에 들어있는 복잡한 생각을 그대로 인정하고 품어 안아주는 당신의 반쪽을 만나는 순간이 있다. 당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등을 토닥여주고, 거울에 비친 당신의 얼굴을 볼 때마다 더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시켜주는 사람을 만나는 순간이 있다.


아마도 맑은 아침도 있을 테고, 구름이 잔뜩 낀 아침을 맞는 날도 있겠지요. 아마도 의혹에 사로잡힌 날, 두려움에 갇힌 날, 소독약 냄새나는 병원 대기실에서 초조하게 하루를 맞이하는 날도 있겠지요. 아마도 화사한 봄날, 몸이 깃털처럼 가벼운 날, 병의 고통을 잊게 되는 날도 있겠지요. 병 따위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고 나면 다시 삶이 계속 되겠지요.
...
그리고 시간이 흐르겠지요.
아마도 또다시 병원에 입원하는 날도, 지겨운 검사를 받아야 하는 날도, 덜컥 겁이 나는 위기의 순간도 있겠지요. 하루 온종일 힘겨운 치료를 견뎌야 하는 날도 있겠지요. 그럴 때마다 당신은 언제나 당당하고 용감하게 싸움터로 나갈 수있을 겁니다. 뼛속까지 두렵고 가슴이 조여오더라도 살아야겠다는 집념을 무기 삼아 용기 있게 맞서야 하겠지요.
그럴 때마다 당신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겁니다. 앞으로 무슨일이 생기더라도 운명과 싸워 얻어낸 이 모든 순간들이야말로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들이었다고 말입니다. 아무도 그 소중한 순간들을 당신에게서 빼앗아갈 수는 없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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