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줄

[내돈내산 BOOK리뷰] #003 열한 계단

자본추적자 2021. 5. 12. 00:44

열한 계단 / 채사장 저



당신이 표류하지 않고 항해하는 삶을 살기를. "출항과 동시에 사나운 폭풍에 밀려다니다가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같은 자리를 빙빙 표류했다고 해서, 그 선원을 긴 항해를 마친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긴 항해를 한 것이 아니라 그저 오랜 시간을 수면 위에 떠 있었을 뿐이다." 기원전 1세기,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가 남긴 말이다. 그는 잔인하게 덧붙인다.

 

"그렇기에 노년의 무성한 백발과 깊은 주름을 보고 그가 오랜 인생을 살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백발의 노인은 오랜 인생을 산 것이 아니라 다만 오래 생존한 것일지 모른다."


불편한 책을 읽는 사람. 불편한 세계를 선택하고, 그 불편함을 극복해가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세계는 아주 넓고 오래되었으며, 그래서 신비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기원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찾거나 만들어낸 세계의 신비로움은 다양한 분야에 숨어 이어져 오고 있다. 내가 들춰내기 전까지 세계의 신비는 나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나의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은 우리를 먹고살게 하고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게 하며 사회를 발전시킬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내 세계의 전부라면 그 삶은 너무나도 아쉽다. 우리는 노동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즐기고 여행하고 놀라워하기 위해 온 것일 테니까.

 

인생이라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세계의 다양한 영역을 모험하는 가장 괜찮은 방법은 불편한 책을 읽는 것이다. 불편한 책 그렇다면 어떤 책이 불편한가? 그것은 자신만이 안다. 그런 책이 있다. 처음 몇 페이지를 넘기면서부터 나를 불편하게 하고 반감을 일으키는 책이 있다. 내가 전혀 알지 못함에도 이미 거짓이라고 믿고 있던 세계, 그렇게 피해왔던 세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책은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중요한 것은 어른이 된 내가 열아홉의 나를 만난다 하더라도 소냐의 삶에 더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해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나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행을 마친 사람이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아무리 여행의 장단점과 주의사항을 말해줘 봤자 소용없다. 스스로 밟아가야 한다. 직접 경험하고 실패하고 배우는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그래야만 여행을 시작한 사람은 여행이 끝날 무렵에 자신이 처음 들었던 이야기들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책을 선택하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첫 번째 사람은 자기에게 익숙한 책을 선택한다. 하나의 책을 읽고 지식을 쌓으면, 다음에는 지식을 더 깊게 하기 위해 비슷한 분야의 책을 다시 선택한다. 하나의 분야에서 그의 지식은 깊어지고, 그는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간다. 이 사람은 우물을 파는 영혼을 가졌다.

 

두 번째 사람은 자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책을 선택한다. 하나의 책을 읽고 그 지혜로 세상을 보게 되었다면, 다음에는 앞선 책에서 얻은 세계관을 뒤흔드는 책을 선택한다. 그에게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강인함이 있다. 또 기존에 움켜쥐었던 세계를 미련 없이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도 지니고 있다. 세계의 지평은 점차 넓어진다. 이 사람은 여행하는 영혼을 가졌다.


산업화 이전의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전체적으로 조망했다. 농사를 짓거나 구두를 만들거나 베를 짜서 옷을 만들었다. 노동의 결과물은 노동의 주체를 소외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산업화 이후 분업화된 환경에서 노동의 결과물은 노동자를 소외시킨다. 현대사회의 노동자는 일의 전체적인 전망을 가질 필요가 없다. 대신 세분화된 특정 분야에 숙달되어 있으면 충분하다. 

 

효율성 때문이다. 노동의 주체로서의 '사람'이 아니라, 한 분야에 특화된 '전문가'가 필요한 이유는 생산량의 극대화 때문이다. 각 분야의 노동자가 자신의 업무를 전문적으로 반복할 때, 사회의 전체 이익은 증대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 명의 개인에게 전문성을 요구하는 이유는 그 사람의 영혼을 고려해서가 아니다. 효율성과 전체 생산량 증대. 이것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전문성 획득은 현실적으로 필요하지 않은가. 나의 전문성은 나를 한 명의 어른으로 사회 안에서 자립하게 하고, 내 가족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한다. 먹고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게 또 어디에 있겠는가. 누구나 떠나고 싶다. 우물을 걷어차고 도망치고 싶다.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을 뿐이다. 사랑하는 배우자와 아이들을 위해서 우리는 얼굴에 미소를 띠고 지친 몸을 이끌고 우물가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래서 비극이 시작된다. 그 비극은 부모로부터 아이에게로 전달된다. 소중한 가정을 위해 스스로 하나의 노동자로, 하나의 전문가로 살아가기를 결심한 부모는 결국 자녀의 가슴에 슬픔을 남긴다. 자신의 날개와 다리를 자르고 우물을 파 내려가는 부모의 영혼은 거울 같은 자녀의 영혼에 깊은 잔상을 남긴다. 만약 인간에게 원죄라는 것이 있고, 그 원죄가 인간의 영혼을 갉아먹는 것이라면, 원죄의 본질은 자녀의 영혼에 깊이 새겨진 부모의 잔상이다. 날개와 다리를 스스로 꺾은 채 우물을 파내려 가는 부모의 뒷모습, 그 뒷모습은 자녀가 자신의 날개와 다리를 스스로 꺾어야 할 당위와 필연을 제공한다.

 

우리는 다시 여행자가 되어야 한다. 자녀도, 부모도, 모든 우물을 파는 영혼은 다시 여행길에 올라야 한다. 사회, 국가, 종교, 가정, 학교, 직장이 요구하는 의무와 평가에 저항해야 한다. 그들이 당신에게 전문성을 강요하고, 당신이 할 수 있는 일로만 당신을 평가하려 한다고 해서 그것을 삶의 목표로 삼고, 그것이 전부인양 맹목적으로 살아가서는 안 된다. 사회와 국가는 당신의 영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사회와 국가는 오직 당신의 노동력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당신은 노동자로 살기 위해 이곳에 태어난 것이 아니다.

 

전문성의 요구에 저항해야 한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노동자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 국가와 사회가 규정해주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를 규정해나가는 주체적인 존재로 변모하게 될 것이다. 당신이 먼저 여행을 시작해야 한다. 당신이 주체적인 존재로 일어설 때, 당신의 자녀도, 가족과 친구도 부러뜨린 다리를 일으키고 꺾었던 날개를 힘차게 펼칠 것이다.


 

소중한 것일수록 곁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가족은 함께 살아야 하고, 부부는 서로 숨기는 게 없어야 하고, 자녀는 속마음을 부모에게 말해야 하고, 연인은 모든 추억을 함께해야 하고, 친구는 나와 가장 친해야 하고, 세상은 나를 받아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인간의 눈과 입은 원래가 모난 까닭에 가까운 대상일수록 쉽게 흠을 찾아내고, 쉽게 상처를 입힌다. 소중한 사람이라면, 지켜주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들이 상처입지 않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그들을 당신으로부터 밀어내야 한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당신을 보호하는 방법은 그들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아니라, 그들을 그리워하는 시간이다. 그리워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외로운 시간이 필요하고, 아무 말도 없이 깊은 내면으로 고독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세상과 단절된 나의 작은 공간에서 나는 회복되어갔다.


한줄 PICK, 

 

당신이 표류하지 않고 항해하는 삶을 살기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아니라, 그들을 그리워하는 시간이다


한 사람의 내면을 넓혀주는 열한 개의 경험과 사유

 

나를 흔들어 키운 불편한 지식들;

죄와 벌. 신약성서. 붓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우주. 체 게바라. 공산당 선언. 메르세데스 소사. 티벳 사자의 서. 우파니샤드. 경계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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