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시간과 자유를 찾아 최소한의 경제적 독립을 추적하는 자본추적자, 자추입니다.
LOSS(로스) - 투자에 실패하는 사람들의 심리(짐 폴 , 브랜던 모이니핸 저)의 'Part One 어느 투자자의 추억담'에 나오는 내용 소개드립니다. 책에서 본질적으로 '돈을 잃지 않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돈을 버는 방법을 배우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투자자/트레이더의 관점에서 주요 내용 몇몇 추려보겠습니다.
LOSS(로스) 투자에 실패하는 사람들의 심리; 어느 투자자의 추억담
책상에 맞춰 같은 나무로 만든 캐비닛은 볼트로 벽에 고정시켜 책상 상판과 마찬가지로 공중에 매달려 있는 듯했다. 내 사무실에 들어가면 눈앞에 펼쳐진 카펫과 카펫에서 솟아오른 구리 기둥, 공중에 두둥실 떠 있는 나무판 두 덩어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마치 중력을 거스르기라도 하듯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게 바로 내가 하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중력을 거스르는 것. 나는 책상 앞으로 가서 의자 끄트머리에 앉아 시장이 개장하기를 기다리며 오늘 하루도 5만 달러를 벌어들일 준비를 했다. 그리고 인생이 이보다 더 좋아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이 맞았다. 인생은 더 좋아지지 않았다.
월요일 아침 대두유 시장이 열렸을 때 스프레드가 우리에게 다소 불리하게 움직였다. 트레이딩이 마감될 무렵 대두유 스프레드 트레이드는 주말 동안 대두 벨트(세계 최대 대두 생산지인 미국 아이오와, 일리노이, 미네소타 등의 10여개 주 옮긴이)에 내린 비 때문에 지난 이틀 동안 거둔 수익을 도로 뱉어냈다. 나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시장이 최근 몇 주 동안 크게 상승세를 보여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했다. '지속적인 상승 장세에서 잠깐 조정을 보인 거야. 게다가 비가 작물에 도움이 되기에는 생장기가 너무 지났어.'
8월 31일 수요일, 소비에트연방이 미국으로부터 대두를 수입하겠다는 협상을 진행한다는 소문이 돌아 대두 가격이 25센트 올라갔는데도 불구하고 대두유 스프레드가 다시 곤두박질쳤다. 나는 대두 가격이 올랐고 소비에트연방 뉴스도 있으니 대두유 시장이 따라잡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확신했다.
목요일에 소비에트 제트기가 대한항공 여객기를 격추시켰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대두에 관련된 선물들, 대두와 대두박, 대두유가 모두 무너졌다.
“대한항공 여객기 격추사건이 대두 시장과 무슨 상관이래?" 내가 물었다.
"1980년에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 카터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소비에트를 상대로 곡물 금수조치를 취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스미스가 대답했다.
“멍청한 생각이야. 러시아가 한국을 침공한 게 아니잖아. 우발적으로 여객기를 격추시킨 거라고, 비교가 안 되지. 시장이 틀렸어. 미국은 곡물 금수조치를 취하지 않을걸."
내 생각이 맞았다. 노동절 주말에 레이건 대통령은 소비에트연방의 공격을 비난하기는 했지만 강하게 보복하지는 않았다. 그는 새로운 곡물 거래협정을 중단시키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 뉴스에 대두는 급하게 반등했지만 대두유 시장의 불 스프레드는 다시 하락했다. 다시 한번 나는 그 원인이 8월의 대두유 시장이 대두보다 더 나은 결과를 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대두는 대두유 시장을 따라잡으려 애쓰는 중이었고 대두유 시장은 다음번에 우위를 차지하기 전까지 쉬고 있을 뿐이었다. 스프레드가 며칠 동안 안정세를 보일 때 시장은 9월 12일에 발표된 농무부의 작황 보고서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 보고서는 대단히 낙관적인 내용이었다. 농작물에 가해진 피해가 이전에 생각한 것보다 한층 심각했던 것이다. 그다음 날, 대두는 거의 가격 상한선으로 시작했지만 가격 하한선에 가까운 수준에서 마감됐다. 하지만 그날 대두유 불 스프레드는 그보다 높은 가격으로 마감됐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좋아. 대두유 시장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아오고 있어. 이 상승 장세는 전부 대두유가 주도한 거야. 그리고 대두유는 다시 반등하기 시작했어. 이 시장이 돌아오고 있다고.' 하지만 다음 날 대두유 시장은 다시 무너졌다. 모든 계약월물이 가격 하한선을 기록했고 가격 하한선이 없는 당월물의 경우는 가격 하한선보다 더 낮았다.
금요일에 시장은 안정을 되찾았고 그 주에 입은 손실액 중 3분의 1가량을 겨우 지웠다. 9월 19일 월요일, 대두 시장과 대두유 시장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질주했다. 주말 동안 캐나다의 겨울폭풍 전선이 위력을 나타내면서 중서부 쪽으로 이동했다. 나는 혼자 생각했다. '잘됐군, 1930년대 이후 최악의 가뭄이 대두 작황에 큰 피해를 입힌 지 고작 몇 주 뒤에 이른 서리가 내려 남은 작물에 피해를 입힐 우려가 생기다니. 좋아. 마침내 시장이 다시 돌아서기 시작하겠어. 이번 서리가 다시 상승장을 만들어낼 거야.' 하지만 일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시장은 다시 곤두박질쳤다. 나는 8월의 마지막 금요일에 브로더릭의 호숫가 집에서 확인했던 것보다 스프레드 트레이드가 활발해지는 것을 다시는 보지 못했다. 감소는 끝이 없었고 드문드문 잠시 상승했다가 다시 내려올 뿐이었다. 어느 날 1만 달러가 올라갔다가 다음 날이면 2만5000달러가 떨어지는 식이었다.
시장은 천천히 하향세를 이어나갔고 나는 몇 달 동안 매일 하루에 2만에서 2만 5000달러 정도를 꾸준히 잃었다. 내가 조언을 해준 고객들은 스스로도 현명했고 경험이 많은 투자자들이었으므로 9월 초부터 시장에서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그런 결정을 내리다니 그들이 자부심과 확신으로 롱 포지션을 취할 용기가 부족하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자연히 나는 그대로 남아서 장기간 발을 담그고 있었다. 이건 엄청난 트레이드가 될 터였다. 세상은 대두유가 바닥이 날 테고 어쩌면 마요네즈까지 품절이 될지 모른다. 그러면 스미스와 나는 1000만 달러를 벌게 될 터였다.
이후 몇 주 동안 스미스와 나는 계속 같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괜찮아질 거야. 시장이 반등할 거야.” 시장에 관해서 뉴스가 들려올 때마다 우리는 '앞으로 괜찮아질 거야'라는 내용의 시나리오를 가다듬었다. “이제는 오늘 시장이 어째서 하락했는지 알고 있잖아. 이유를 알고 있으니까 하락세가 멈추겠지. 우리는 괜찮아질 거야.” 우리는 모든 것을 합리화했다. 마치 <토르티야 마을>에 등장하는 대니와 친구들처럼 모든 것을 합리화하며 살아가는 듯이 느껴졌다. “그래, 우리는 어느 거대 영리회사가 대두유를 인수했다는 소식을 들었어. 그러니 그 회사가 막아준다면 우리는 이제 틀림없이 괜찮아질 거야."
10월 중순에 나는 물속에 잠겨 있었다. 8월 11일에 농무부에서 수확 축소를 예상하는 농작물 보고서를 발표한 지 두 달 뒤 대두가격이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대두유는 9월에 최고가인 37센트를 기록했다가 이제 29 센트로 내려왔다. 나는 대부분의 자산을 잃었다. 포지션이 점차 악화되면서 나는 마진콜을 요구받기 시작했다. 연이어 이삼일 동안 마진콜을 받았을 때 증권회사는 이런 태도를 보였다. “고객님은 거물이시죠. 외환거래위원회 이사시고 집행위원회에도 소속되어 계십니다. 회사에서 직위도 높으시지요. 자금능력이 충분하신 걸 알고 있습니다.” 나는 며칠 동안 기다리면서 혹시 시장이 반등 하지나 않을까 지켜봤다. 만약 반등한다면 나는 마진콜을 충족시킬 필요가 없다. 만약 시장이 반등하지 않으면 나는 마진콜을 충족시키기 위해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려 노력해야만 한다.
나는 서서히 냉정함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아내, 아이들과 싸움을 했고 식구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몰랐다. 트레이더의 배우자와 가족들이 트레이더의 시장 포지션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은 아니었다. 나는 가족들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저녁도 먹지 않았다. 그러느라 살이 7킬로그램 가까이 빠졌다. 잠도 오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서 이 상황을 다시금 지켜봐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 매일 밤 잠자리에 들었다. 그건 끔찍한 일이었다.
아마 금요일이었던 것 같다. 내가 말했다. “좋아, 금요일이군. 시장이 열리지 않으니까 이틀 동안은 더 이상 돈을 잃지 않겠군.” 주말은 환영이었다. 내가 트레이드로 돈을 벌어들일 때와는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돈을 벌때는 시장이 열리기만 기다렸다. 돈을 잃고 있으니 시장이 마감하는 시간만 기다려졌다. 돈을 잃을 때는 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른다. 내가 원하는 것은 시장이 8월의 최고가로 반등하고 나는 빠져나가는 것뿐이었다.
우리는 명확히 눈에 보이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다. 서로의 손을 잡은 채 평균 2만에서 2만 5000달러씩 날마다 돈을 잃으면서도 곧 괜찮아질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당연히 상황은 결코 괜찮지 않았다.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포지션을 유지하는 이상 내가 돈을 되찾을 수 있다는 믿음과 기회, 희망이 항상 남아 있기 때문에 시장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만약 시장에서 빠져나와버리면 더 이상 기회는 남아 있지 않을 테니까. “내일은 내 남은 인생의 첫날이야. 시장이 반등할 거야. 내일은.” 시장은 언제나 반등할 것 같았다. “내일은.”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11월 첫 주, 나는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20만 달러 아니면 30만달러였다. 대두유 가격이 25센트로 하락했다. 그래서 8월의 최고 수준에 비해 나는 70~80만 달러를 잃었다. 설상가상으로 친구들에게 40만 달러 가량을 빌리기까지 했다. 11월 중순에는 또 한번 마진콜을 받았지만 친구들에게 더 이상 돈을 빌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이 위기를 헤쳐나가기로 마음먹고 내가 마진콜을 충족시키지 않아도 될 만큼 시장이 충분히 반등할 것인지 지켜보기로 했다. 11월 17일, 증권회사의 고위간부 한 명이 사무실로 나를 찾아왔고 나의 모든 포지션을 매각했다. 마침내 증권회사는 자비롭게도 나한테서 완전히 손을 떼 버렸다. 내가 회생할 가능성이 없었으니까.
그들은 계좌를 청산했을 뿐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자산을 압류하기 시작했다. 내 회원권을 빼앗아 팔았고 그로 인해 나는 운영위원회와 집행부에서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상업거래소의 회원이 아니라면 위원회에 남아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말 그대로 사무실 집기를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온갖 가구와 오디오를 비롯해 공중에 떠 있는 책상과 캐비닛까지 모두. 그들이 내 사무실을 탈탈 털기 시작할 무렵에 책상에 앉아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내 인생에서 최악의 순간이었다. 8월 26일에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있던 나는 11월 17일에 빈털터리가 됐다. 그들이 모든 물건을 들고 나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수가 없어서 벽에 걸어둔 가족사진들을 떼어내 상자 안에 담아 들고 사무실을 나섰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궁리하면서 잠시 상업거래소 복도를 배회하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친구들에게는 더 이상 한 푼도 빌릴 수가 없었고 그동안 돈을 벌수 있다는 희망을 걸 수 있었던 것은 대두유 포지션밖에 없었다. 이제 그 희망마저 사라졌다.
팻과 나는 예전에도 어려운 시절을 겪어본 적이 있고 분명히 이번에도 잘 견뎌낼 것이다. 세상에! 팻! 지금까지 일어난 사건을 그녀에게 어떻게 설명하지? 15년간 내가 쌓아온 경력과 재산이 지난 두 달 반 동안 물거품처럼 사라졌다고 어떻게 이야기하지? 나는 잭대니얼스 한 잔을 기울이며 고민을 정리해보기 위해 상업거래소의 리버클럽으로 향했다.
몇 시간 동안 술을 몇 잔 들이켜고 나서 나는 비틀거리며 포르쉐로 걸어갔다. 그리고 가족들을 이 시련에서 벗어나게 할 유일한 방법은 내가 자살하는 것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내가 죽으면 100만 달러를 받을 수 있는 생명보험을 들어놨으니 가족들을 위해 이 상황을 바로잡으려면 시속 160킬로미터로 다리를 들이받는 수밖에 없었다. 또 이런 생각도 떠올렸다. “어쨌든 내가 과음하는 것도 모두 봤잖아. 그러니까 사고로 보일 거야.” 자살이라면 보험회사가 보험금을 지불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케네디 고속도로로 들어서서 다리를 찾기 시작했다. 도시를 벗어나가기도 전에 백미러를 통해 반짝이는 푸른색 경광등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 경찰이 창가로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면허증과 등록증 주십시오. 폴 씨, 시속 몇 킬로미터로 운전하셨는지 아십니까?"
“어… 150? 160쯤요?"
"30도 안 되게 하셨습니다.”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나는 너무 취한데다 그날 벌어진 일로 정신이 나간 나머지 기어를 1단에 그대로 두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과속 딱지를 받은 게 아니라 부주의한 운전자에게 부과되는 저속 딱지를 끊었다. 포르쉐를 타고 고속도로에서 시속 30킬로미터 이하로 운전을 하고 있었으니 나는 도로 위의 위험요소였다.
자살충동이 일시적인 광기처럼 불어닥쳤다가 가라앉고 난 뒤에 나는 집에서 3주를 보냈다. 거실 바닥을 다시 손질하고 이것저것 안팎의 자질구레한 부분들을 손봤다. 마치 건설적인 일을 하는 것처럼 행동해야만 했으므로 나는 만능 수리꾼이 됐다. 그게 내 '일자리'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텔레비전으로 금융뉴스 채널을 시청하면서 마치 시장을 지켜보며 상황을 계속 파악해나가는 것처럼 굴었다. 설사 상황을 안다고 해도 투자할 돈이 한 푼도 없었으면서 말이다. 심지어 차트도 계속 업데이트했지만 모두 가짜였다. 사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하는 것처럼 연기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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